삼 십 세 눈과








삼 십 세 



                                                                         최승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최승자 시집, <이 시대의 사랑>, 1981, 문학과지성사.


기도는 협박, 사랑은 봉변 눈과




                                    




91.
도는 협박, 사랑은 봉변



                                                                이성복 




                                                                                              당신의 목소리로 가두지 않는다면
                                                                                              난 손바닥에서 뛰쳐나와
                                                                                              암청색의 정원으로
                                                                                              내 몸을 부어버리겠어요……
                                                                                              ㅡ라이너 마리아 릴케, 「신부」  










그럴만도 하지. 쓰레기를 버리려다 쓰레기통에 딸려 바다
에 빠졌구나. 피댓줄에 감겨 생철 지붕 끝까지 딸려 올라가 
너덜너덜해졌다는 정미소 주인 같구나. 씨나락 까먹다 소쿠리
에 갇힌 참새 같구나. 그래, 그럴만도 하지. 하지만 꼭 그래
야 하는 건 아니지. 기도는 협박, 사랑은 봉변. 그래, 제 몸을 
부어 버리겠다고? 흙을 물이라 하면 불이 믿겠니, 바람이 믿겠
니.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 하지만 그럴 만도 해. 복사본
이 잘못돼서 복사집에 따졌더니, 애초에 원본이 잘못이었다
……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2003, 열림원 



불빛을 흔들어서 눈과




불빛을 흔들어서

 

 

                                                                                                                 장석남

 

음악을 틀고
촛불을 켜고
숨결로, 몸짓의 바람으로
불빛을 흔들어서
불이 일그러뜨리는 방과 책과 음악과
내 그림자를, 서글픔들을
무슨 수로도 외면할 수 없는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다시 들여다보고

 

차라리 불을 끄고
방을 지우고 내 그림자를 지우고
책을 지우고 공책을 지우고 공책 속
시를 지우고
귓속에
오래 전에 들어둔
물결 소리들이나 방목할까
(이미 방목되고)
물가에 찍혔던 발자국들
음흉한 시간 속으로
걸어가고

 

음악을 틀고
촛불을 켜고
불빛을 흔들어
몸짓을 조이고
숨죽여
불빛 속을 들여다본다

 

숨으로 몸짓의 바람으로
불빛을 흔들어
시를 흔들어
바람벽에
詩를 시의 石佛을 그린다




장석남시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中, 문학과지성사,1999.


귀향 눈과




밤의 정원에 삽을 들고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귀향> 결말 다시 쓰기
신영배
 
나는 당신을 냉동고에 집어넣고 전원을 켰어요 윙윙 당신의 옆구리로 쏟아지던 피는 서서히 단단해져요 며칠이 지났나 몰라요 나는 코드를 뽑은 냉동고를 싣고 한낮을 달려 피가 녹기 전에 당신이 풀리기 전에  땅 속에 묻으려 해요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딸이 커튼을 둘러친 집 밤의 정원 지하를 완성하고 감쪽같이 거의 다 됐는데, 나는 거기서 결말을 다시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들의 결말 말이죠
 
엄마, 엄마는 눈물이 없는 유령
난 커튼에 몸을 돌돌 말고 사라진 인형
엄마가 무심코 열어버린 이층 창문
돌돌돌 풀려 허공에 흩날리는 커튼
나는 목이 부러진 인형 이제 도와주세요
그 상자 말이죠 어떡해요
엄마는 죽었지만
내가 앉은 변기 속에서 방귀를 뀌고
내가 잠든 침대 밑에서 킬킬 웃어대고
밀가루를 부옇게 날리며 주방을 오가고
정오마다 달콤한 도넛을 만들어내고
창 밖 죽은 나무가 가지들을 어둠으로 칠할 때
거울 속에 앉아 흰머리에 염색약을 칠하는 엄마의 오후
어떡해요 그 상자 얼음이 풀리고
틈으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살이 비어져 나오는
 
111. 딸들의 정원(자정)
엄마는 무덤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나는 엄마와 상자를 함께 묻는다
엄마가 상자를 꼬옥 끌어안는다
상자는 엄마의 두 팔에 묶여 움직이지 못한다
아버지가 바지지퍼를 내리는 주방의 공포와
어린 딸이 아버지의 옆구리에 칼로 그어 올린 붉은지퍼가
더 이상 풀리지 않는다
 
알아요 엄마
엄마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벽 속에서 걸어나와
혈압을 떨어뜨리기 위해 헬스자전거라는 걸
엄마는 죽었지만 
 


<귀향>은 가족에 관한 영화이고 나의 가족과 함께 한 영화이다. 나의 가족은 쏠레와 라이문다처럼 성공을 위해 촌에서 도시로 왔다. 내 여동생은 다행히도 어린 시절의 경험과 어머니의 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 집에서 나와 도시인이 되었다. 라 만차의 관습과 문화로 돌아 갔을 때 그러한 경험이 나의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 페드로 알모도바르


"알모도바르는 내게 최고의 감독이다. 그는 나의 왕이다.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의 영화들은 나를 유혹했다. 나는 알모도바르의 영화 때문에 배우가 되었고, 그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꿈 같은 날을 기다렸고, 그날이 오게 됐다."

-페넬로페 크루즈



사실은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눈과

사실은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이동진

 

세 독일의 전설에 이런 게 있지요. 독일 바덴 지방의 어느 젊은 백작이 덴마크를 여행하다가 아름다운 성의 정원에서 오라뮨데 백작 부인을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그는 그 성에 머물면서, 남편을 잃고 아이들과 살아가던 오라뮨데 백작 부인과 깊은 사랑을 나눕니다.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을 때 그는 “네 개의 눈이 있는 한 당신을 바덴으로 데려갈 수 없다오. 네 개의 눈이 사라지면 반드시 당신을 데리러 오겠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네 개의 눈이란 자신의 부모를 뜻하는 말이었지요.

 

집으로 돌아간 그는 반대할 줄 알았던 부모로부터 수개월 뒤 의외로 쉽게 허락을 받자 기쁨에 들떠 덴마크로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오라뮨데 백작 부인이 아이들을 살해한 뒤 죄의식에 몸져 누운 채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백작 부인은 ‘네 개의 눈’이 새로운 사랑에 방해가 되는 자신의 아이들인 걸로 오해해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거지요. 자초지종을 알게 된 독일 백작은 말을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칩니다.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백작 부인의 그 처참한 사랑으로부터 말입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대학생 츠네오가 다리를 쓰지 못해 집에만 틀어박힌 조제를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판자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 조제와 사랑을 나누다가 서로 다른 처지 때문에 헤어지게 된 츠네오는 조제의 할머니가 죽자 이를 계기로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 함께 삽니다. 결혼까지 염두에 두고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에게 소개시키기 위해 조제와 자동차를 타고 떠난 츠네오는 도중에 마음을 바꿔 갈 수 없게 됐다고 고향에 전화를 합니다. 전화를 받던 동생은 “형, 지쳤어?”라고 되묻지요.

 

그 여행 후 결국 츠네오는 조제와 헤어집니다. 영화 속 이별의 순간은 의외로 너무나 깔끔합니다. 조제는 담담히 떠나 보내고, 츠네오는 별다른 위로의 말 없이 그냥 일상적인 출근이라도 하는 듯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섭니다. 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옛 여자친구는 그를 만나자마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합니다. 묵묵히 들으며 함께 걷던 츠네오는 갑자기 무릎을 꺾고 길가의 가드 레일을 잡은 채 통곡합니다. 그 순간 츠네오의 독백이 낮게 깔립니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는 여러가지 댈 수 있지만, 사실은 단 하나 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결국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우리가 도망쳐 떠나온 모든 것에 바치는 영화입니다. 한 때는 삶을 바쳐 지켜내리라 결심했지만, 결국은 허겁지겁 달아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처참한 결말을 논외로 한 채 사랑 자체의 강렬함만으로 따지면, 오라뮨데 백작 부인 만큼 온 몸을 던지는 사람도 없겠지요.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조제만큼 절박하게 사랑이 필요한 경우도 드물 거고요. 공포 때문일 수도 있고 권태나 이기심 탓일 수도 있겠지요. 동생이 되물었듯, 츠네오는 그저 지쳤던 것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떠나갑니다.

 

모든 이별의 이유는 사실 핑계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긴, 사랑 자체가 홀로 버텨내야 할 생의 고독을 이기지 못해 도망치는 데서 비롯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게 어디 사랑에만 해당되는 문제일까요. 도망쳐야 했던 것은 어느 시절 웅대한 포부로 품었던 이상일 수도 있고, 세월이 부과하는 책임일 수도 있으며, 격렬하게 타올랐던 감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결국 번번이 도주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벗어냅니다. 그리고 항해는 오래오래 계속됩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길. 이 아름다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머리를 깨끗하게 묶은 조제의 뒷모습처럼, 결국엔 우리가 두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진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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